
일본 NHK에서 1983년 방영된 《오싱》은 평균 시청률 52.6%, 최고 시청률 62.9%를 기록한 전설적인 대하드라마입니다. 총 297부작이라는 압도적인 분량을 보면서 저는 처음엔 '이게 다 볼 수 있는 드라마인가' 싶었는데, 일단 시작하고 나서는 멈추기가 어려웠습니다.
일곱 살 아이가 쌀 한 가마니 값이었던 시대
드라마는 1907년, 메이지 말기의 야마가타현 농촌에서 시작합니다. 일곱 살 오싱은 쌀 한 가마니를 받는 조건으로 남의 집에 보내집니다. 이게 실제로 있었던 일이라는 게, 저는 첫 회를 보면서 한동안 멍했습니다.
여기서 소작농(小作農)이라는 배경을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습니다. 소작농이란 자기 땅 없이 지주의 토지를 빌려 농사를 짓고 수확물 일부를 소작료로 내는 농민을 말합니다. 오싱의 가족이 겪는 극심한 가난은 개인의 나태함이 아니라 이 구조적 빈곤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드라마는 그 사실을 조용하지만 분명하게 보여 줍니다.
처음 보내진 집에서 오싱은 도둑 누명까지 씁니다. 혹독한 겨울,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 아이가 쫓겨나는 장면은 솔직히 보기가 힘들었습니다. 그런데 그 장면이 불편하게 느껴졌던 이유는, 그게 오싱 한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라 그 시대 수많은 가난한 아이들의 현실이었기 때문입니다. 교육과 어린 시절을 통째로 포기하고 노동 현장에 던져진 아이들. 드라마는 그 무게를 감상적으로 포장하지 않고 담담하게 놓아둡니다.
작가 하시다 스가코는 이 시대를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오싱의 삶을 결정짓는 조건으로 사용합니다. 오싱이 당한 부당함은 그의 불운이 아니라 시대가 가난한 여성 아이에게 부과한 현실이었습니다. 저는 이 드라마를 보면서 '열심히 하면 된다'는 말이 얼마나 많은 것을 생략하고 있는지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기다리지 않았다, 배우고 움직였다
오싱을 단순한 '고난 극복 서사'로 읽으면 절반밖에 못 보는 것 같습니다. 제가 이 드라마에서 가장 인상 깊게 본 부분은 오싱이 누군가가 상황을 바꿔 주기를 기다리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상황이 바뀔 때마다 그는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을 찾아냈습니다.
오싱은 일하는 집에서 글과 셈을 익힙니다. 이후 미용 기술을 배우고, 그 기술로 경제적 자립의 실마리를 만듭니다. 여기서 미용사(美容師) 직업의 의미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데, 당시 여성이 기술직으로 생계를 꾸린다는 것은 극히 제한된 선택지 중 하나였습니다. 오싱이 이 길을 선택하고 기술을 체화한 것은 단순한 생존 수단을 넘어 경제적 주체성을 갖는 행위였습니다.
다노쿠라 류조와 결혼한 뒤에도 시련은 계속됩니다. 시댁의 반대, 남편의 사업 실패, 1923년 간토 대지진, 전쟁. 이 모든 것을 겪으면서 오싱은 전후(戰後)에 생선 장사부터 다시 시작합니다. 전후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의 시기를 말하는데, 당시 일본은 경제 기반이 초토화된 상태였습니다. 그 시점에서 아무것도 없이 다시 장사를 시작하는 오싱을 보면서, 저는 '이 사람의 생활력은 대체 어디서 오는 걸까'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제 경험상 이런 류의 인물 서사는 재능이나 행운을 과도하게 강조하는 경우가 많은데, 《오싱》은 달랐습니다. 오싱의 힘은 화려한 재능이 아니라 작은 기회를 놓치지 않는 관찰력과, 사람의 마음을 살피는 태도에서 나옵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 식모살이 중 글·셈을 독학으로 습득
- 미용 기술을 익혀 기술직 여성으로 자립 기반 마련
- 전후 생선 장사로 재기, 이후 슈퍼마켓 체인 '다노쿠라 상점'으로 성장
한 여성의 이야기가 근대사 교과서가 되는 방식
《오싱》이 방영 당시 일본에서 평균 시청률 52.6%를 넘겼고, 이후 아시아·중동·아프리카 등 여러 나라에 수출되며 국제적 공감을 얻은 이유가 뭘까요. 저는 이 드라마가 한 개인의 삶을 통해 시대의 구조를 보여 주는 방식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출처: 한국어 위키백과 〈오싱〉).
드라마는 메이지 말기부터 쇼와 시대까지, 러일전쟁 이후의 농촌 빈곤, 다이쇼 데모크라시, 제2차 세계대전, 전후 고도경제성장까지 일본 근현대사(近現代史) 전체를 오싱의 삶 안에 담습니다. 근현대사란 19세기 후반부터 현재에 이르는 역사를 가리키는데, 오싱의 인생이 그 자체로 살아 있는 연대기가 됩니다.
제가 직접 시청해 보니, 오싱이 겪는 개별 사건들이 단순한 드라마적 갈등이 아니라 당시 사회 구조와 맞닿아 있다는 점이 계속 느껴졌습니다. 소작농 가정의 빈곤, 여성과 아동에게 제한된 교육 기회, 전쟁이 평범한 가정에 남긴 상처. 오싱이 불합리한 상황에 처할 때마다 '이건 오싱이 약해서가 아니라, 시대가 이 사람에게 유독 가혹했기 때문'이라는 사실이 쌓여 갑니다.
NHK 연속 TV 소설(連続テレビ小説), 흔히 '아사도라'라고 불리는 장르의 특성상 매일 아침 짧은 호흡으로 방영되는데, 《오싱》은 이 포맷 안에서 거대한 역사를 담아낸 드문 작품입니다. 아사도라란 NHK가 매주 월요일부터 토요일 아침에 방영하는 15분짜리 연속 드라마로, 주로 여성 주인공의 일대기를 다루는 장르입니다(출처: NHK 아카이브). 297부작이라는 분량이 괜히 나온 것이 아닙니다.
성공한 뒤에도 행복하지 않다는 것, 결말이 말하는 것
노년의 오싱이 자신이 일군 슈퍼마켓 체인 '다노쿠라 상점'의 경영 위기와 가족 갈등을 마주하는 장면은, 사실 이 드라마에서 가장 무게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평생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 모든 것을 쏟아부었는데, 돈과 사업의 성공이 가족 모두의 행복을 보장하지 못했다는 사실. 그것이 드라마 후반부의 핵심입니다.
오싱은 손자 케이와 함께 야마가타현 고향을 찾아가며 자신의 지난 삶을 되짚습니다. 이 여정은 단순한 회고가 아닙니다. '내가 왜 이렇게 살았는가', '성공이란 무엇이었는가'를 스스로에게 묻는 과정입니다. 저는 이 장면들을 보면서 성공의 의미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는데, 제 경우엔 오싱이 고향 마을을 걸으며 아무 말 없이 서 있는 장면이 가장 오래 남았습니다.
드라마는 결말에서 오싱이 가족에게 돌아오고, 갈등도 화해의 실마리를 찾는 방향으로 마무리됩니다. 이른바 '화해와 희망의 결말'입니다. 그런데 저는 이 결말을 보면서 한편으로는 비판적인 시선도 갖게 되었습니다. 오싱의 서사 전체를 돌아보면, 그가 가족과 시대를 위해 희생한 양이 너무 큽니다. 여성에게 고난을 견디고 헌신하는 태도를 미덕으로 강조하는 방식이 때로는 불편하게 느껴졌습니다.
물론 당시 시대적 현실을 사실적으로 재현하는 데 필요한 설정이라는 점은 이해합니다. 하지만 오싱이 불합리한 대우에 더 적극적으로 맞서는 장면이 더 있었다면 이 인물이 더 입체적으로 보였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그럼에도 돈을 모아 성공한 뒤에도 외로움과 갈등을 피하지 못하는 오싱의 모습은, 경제적 성공이 삶의 완성이 아니라는 것을 조용히 말합니다. 가난에서 벗어나는 것과 잘 사는 것은 다른 문제라는 것, 이 드라마가 끝나고 한동안 머릿속을 떠나지 않은 질문이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오싱은 어디서 볼 수 있나요?
A. 총 297부작이라 스트리밍 플랫폼에서 전편을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일부 유료 VOD 서비스나 NHK 관련 아카이브에서 제공되는 경우가 있으며, 국내에서는 과거 TV 방영 당시 더빙된 버전이 유통되기도 했습니다. 현재 시청 가능한 경로는 플랫폼 상황에 따라 달라지므로 직접 검색해 보시는 것이 가장 정확합니다.
Q. 297부작이면 다 보는 데 얼마나 걸리나요?
A. 아사도라 포맷 특성상 각 회가 15분 내외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전편을 이어 본다면 순수 시청 시간만 약 70~75시간 정도 됩니다. 하루 1시간씩 본다고 해도 두 달 이상 걸리는 분량이지만, 저처럼 일단 시작하면 멈추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Q. 오싱이 실화인가요?
A. 특정 실존 인물을 모델로 한 작품은 아닙니다. 작가 하시다 스가코가 메이지 말기부터 쇼와 시대까지 실제로 존재했던 사회적 배경과 당시 여성들의 삶을 취재하고 재구성한 창작 드라마입니다. 다만 오싱이 겪는 소작농의 빈곤, 식모살이, 전쟁의 상처는 당시 실제로 많은 이들이 경험한 현실이었기 때문에 '실화처럼 느껴진다'는 반응이 많습니다.
Q. 한국에서도 방영된 적 있나요?
A. 있습니다. 《오싱》은 일본 외 여러 나라에 수출되었고, 한국에서도 방영된 바 있습니다. 당시 한국 시청자들에게도 큰 반향을 일으킨 작품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수출 당시 아시아 전역에서 공감을 얻은 이유 중 하나는, 가난과 전쟁을 겪은 세대의 경험이 일본에 국한된 것이 아니었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결론
《오싱》은 고난을 이겨 낸 성공담이면서, 동시에 한 시대가 가난한 여성과 아이에게 요구했던 희생을 기록한 작품이라고 평가하고 싶습니다. 제가 이 드라마를 보면서 가장 오래 붙들고 있던 질문은 "왜 어린아이가 이렇게 많은 것을 감당해야 했는가"였습니다. 그 질문을 갖고 드라마를 보면 오싱의 성공이 훨씬 다른 무게로 다가옵니다.
오싱의 삶에 감동받는 것과, 그 삶이 요구된 시대적 구조를 비판적으로 보는 것은 동시에 가능합니다. 저는 이 두 가지 시선을 함께 가지고 볼 때 《오싱》이 더 깊이 읽힌다고 생각합니다. 297부작이라는 분량에 망설여진다면, 우선 초반 어린 오싱의 식모살이 부분만이라도 한번 보시길 권합니다. 그 장면들이 충분히 나머지를 이끌어 줄 것입니다.
참고: 오싱 (한국어 위키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