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솔직히 저는 「돌풍」을 보기 전까지, 이 드라마가 단순한 정치 스릴러일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12부작이라는 것만 알고 틀었는데, 1화부터 대통령 시해 시도가 나왔습니다. '이게 주인공이 하는 짓이라고?' 싶어서 멈추지를 못했습니다. 다 보고 나서 든 생각은 하나였습니다. 이 드라마가 단순히 재미있는 척하면서, 사실은 꽤 불편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운동권 괴물론, 예상보다 훨씬 직설적이었습니다
일반적으로 한국 정치 드라마에서 민주화 운동 출신 인물은 도덕적으로 흠 없는 주인공으로 그려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도 그 공식을 당연하게 여기고 있었는데, 「돌풍」은 그 공식을 정면으로 깨버립니다.
국무총리 박동호, 경제부총리 정수진, 대통령 장일준. 이 셋은 모두 민주화 운동을 함께한 동지 출신입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른 뒤에는 재벌과의 정경유착, 즉 정치권력과 기업 자본이 서로를 비호하는 부패 구조의 한복판에 서 있습니다. 정경유착이란 정치인이 기업에 특혜를 주는 대신 정치 자금이나 이권을 받는 형태의 유착 관계를 말하는데, 드라마는 이것이 특정 진영의 전유물이 아니라 권력을 쥔 모든 세력에서 반복된다는 점을 집요하게 파고듭니다.
제가 가장 불편했던 장면은 박동호가 정수진에게 "왜 독재에 반대했지? 그들도 산업화를 이뤄냈는데"라고 묻는 부분이었습니다. 이 대사 하나가 드라마 전체의 핵심을 압축하고 있다고 느꼈습니다. 좋은 명분이 있어도, 그 명분으로 자신들의 권력 유지를 합리화하는 순간 기존 독재와 다르지 않다는 이야기입니다. 저는 이걸 보면서 꽤 오래 화면을 멍하니 바라봤습니다.
드라마 장르 측면에서 보면, 「돌풍」은 피카레스크 구조를 채택하고 있습니다. 피카레스크란 도덕적으로 완전하지 않은 인물이 주인공으로 등장해 사회의 부조리를 드러내는 서사 방식을 말합니다. 박동호는 정의를 내세우지만 대통령 시해라는 극단적 폭력을 선택하고, 정수진은 개혁을 외치면서 동시에 부패 구조 안으로 점점 깊이 들어갑니다. 어느 쪽도 손이 깨끗하지 않습니다. 저는 이 구조 덕분에 시청 내내 "이 사람을 응원해도 되나" 하는 질문을 계속 던지게 됐습니다.
드라마가 던지는 핵심 메시지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민주화 운동 세력도 권력을 쥐면 기득권이 된다는 586 세대 자기비판
- 진영을 가리지 않는 정경유착 구조의 지속성
- "명분이 아무리 정의로워도, 수단이 폭력이면 같은 괴물"이라는 경고
- 제도 안 개혁이 아닌 초인적 개인의 희생으로 귀결되는 서사 구조
언론 평론에서는 이 드라마를 "세상의 불의에는 분노하지만 자신의 불의에는 관대한 괴물을 그린 작품"으로 분석했고(출처: 경향신문), 저도 그 평가가 가장 정확하다고 생각합니다.
정치혐오를 자극하는 서사, 카타르시스인가 독인가
일반적으로 정치 스릴러 드라마는 부패한 세력과 맞서는 영웅을 통해 대리만족을 제공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저도 처음엔 그런 기대를 가지고 봤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경험해보니, 「돌풍」은 그 공식을 절반쯤만 따릅니다.
카타르시스란 억눌린 감정이 극적인 장면을 통해 해소되는 경험을 뜻합니다. 「돌풍」은 부패한 권력이 무너지는 장면에서 분명히 이 카타르시스를 제공합니다. 박동호가 대통령 대행으로서 재벌 카르텔을 밀어붙이는 장면들은, 현실 정치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장면이라 통쾌하게 느껴지는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 쾌감이 끝나고 나면 뭔가 씁쓸한 뒷맛이 남습니다. 제가 그 이유를 한동안 생각해봤는데, 결국 이 드라마 안에 등장하는 정치인이 사실상 전원 부패하거나 위선적인 인물로 그려지기 때문이라는 결론이 나왔습니다. 드라마 속 대사처럼 "어둠이 더 큰 어둠을 상대하고 있을 뿐"인 세계에서, 시청자는 누군가를 응원할 수 없게 됩니다.
이런 서사가 현실과 맞물릴 때 어떤 효과를 내는지도 생각해봤습니다. 드라마가 공개된 2024년 기준으로, 한국 정치에 대한 대중의 불신은 상당한 수준이었습니다. 한국행정연구원의 사회통합실태조사에 따르면 중앙정부에 대한 신뢰도는 지속적으로 낮은 수준을 기록하고 있으며(출처: 한국행정연구원), 「돌풍」은 바로 이 정서에 정확히 꽂히는 드라마입니다.
문제는 드라마가 이 불신을 해소하는 대신 더 강화하는 방향으로 흐른다는 점입니다. 부패 구조를 바꾸는 시민의 힘이나 새로운 정치 주체의 가능성은 거의 등장하지 않습니다. 결국 박동호라는 한 인물의 극단적 희생으로 정국이 정화되는 구조인데, 이건 민주주의적 해결이 아니라 영웅주의적 판타지에 가깝습니다. 이 지점에서 저는 드라마에 대해 솔직히 한 발 물러서게 됐습니다.
결말에서 박동호는 절벽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으며 모든 죄를 혼자 짊어지는 방식을 택합니다. 이 선택이 '정의'인지 '또 다른 폭력'인지는 시청자가 판단해야 하는데, 제 경험상 이 질문이 가장 오래 머릿속에 남았습니다. 쉽게 답이 나오지 않는 질문이라는 점에서 이 드라마는 분명히 수작이지만, 동시에 그 질문이 남긴 것이 냉소 외에 무엇인지는 스스로도 확신하기 어렵습니다.
「돌풍」을 보고 나서 저는 이 드라마를 단순히 재미있는 정치 스릴러로 추천하기가 망설여집니다. 통쾌하지만 불편하고, 날카롭지만 결국 정치혐오를 키우는 양날의 검 같다는 인상이 남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한번은 볼 가치가 있는 드라마입니다. 다만 보고 난 뒤 뒷맛이 쓰다면, 그 쓴맛이 무엇인지 한번쯤 생각해보시기를 권합니다. 그 생각 자체가 이 드라마가 의도한 것일 수 있으니까요.
참고: 돌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