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악당을 응원하면서 불편함을 느낀 적이 있으신가요? 저는 이 드라마를 보는 내내 그 모순적인 감정을 반복해서 경험했습니다. 디즈니+ 오리지널 「메이드 인 코리아」는 1970년대 한국을 배경으로, 국가를 수익 모델로 삼으려는 중앙정보부 요원과 그를 끝까지 추적하는 검사의 대결을 그린 범죄 스릴러입니다. 보고 나서 가볍게 다음 콘텐츠로 넘어가기 어려운 드라마였습니다.
요도호 납치와 '국가=비즈니스'라는 발상
처음 재생을 눌렀을 때 솔직히 기대치는 높지 않았습니다. "현빈, 정우성이 나오는 시대극 범죄물이겠지"라는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1화 오프닝이 시작되자마자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1화는 1970년 실제 발생한 요도호 납치 사건을 모티브로 한 일본항공 351편 공중 납치 장면으로 열립니다. 여기서 요도호 납치 사건이란, 일본 적군파가 여객기를 납치해 북한으로 향한 실제 역사적 사건으로, 당시 한국 정부와 정보기관이 깊숙이 개입된 복잡한 외교 사건입니다. 드라마는 이 역사적 사건을 무대 장치로 삼아, 그 혼란 속에서 '사업'을 굴리는 한 남자를 전면에 세웁니다. 그가 바로 중앙정보부 부산지부 정보과 과장 백기태(현빈)입니다.
제가 직접 보면서 느낀 건, 백기태가 내뱉는 논리가 단순한 악당의 궤변처럼 들리지 않는다는 점이었습니다. "국가도 결국 돈이고, 권력도 결국 시스템이다"라는 그의 냉소는, 1970년대 개발독재 시대의 실제 구조와 너무 정확하게 맞물려 있어서 섬뜩하게 느껴졌습니다. 개발독재란 경제 성장을 명분으로 국가 권력이 민간 자원과 인력을 강제로 동원하던 통치 방식으로, 이 시기 한국의 급속한 산업화와 동전의 양면을 이루는 개념입니다. 드라마는 이 구조가 실제로 어떻게 범죄와 결합했는지를 백기태의 이중생활로 보여줍니다.
피카레스크 서사와 장건영의 고독
피카레스크(picaresque)라는 장르 용어가 이 드라마에 자주 붙습니다. 피카레스크란 도덕적으로 결함 있는 주인공이 세상을 헤쳐나가는 서사 구조를 가리키는데, 악인이나 야망가를 전면에 내세워 사회의 모순을 드러내는 방식입니다. 백기태가 그 전형적인 피카레스크적 반영웅이라면, 2화부터 본격 등장하는 부산지검 검사 장건영(정우성)은 그 반대편에 서 있는 인물입니다.
제 경험상 장건영 캐릭터는 처음엔 전형적인 정의파 검사처럼 보였습니다. 그런데 에피소드가 진행될수록 이 인물이 단순한 영웅이 아니라는 게 점점 선명해졌습니다. 그는 승진과는 거리가 먼 만년 평검사로, 수사를 파고들수록 증거가 사라지고 윗선에서 제동이 걸리는 경험을 반복합니다. 중정 내부의 보이지 않는 압력, 조직 내 배신, 협력자들의 이탈이 겹치면서 장건영은 점점 시스템 안에서 혼자가 되어갑니다.
이 장면들을 보는 내내, 저도 같이 피로해지고 답답해졌습니다. "이 정도면 포기할 만도 한데 왜 계속 가나?"라는 생각과, "그래도 누군가는 이 자리를 지켜야 하지 않나"라는 감정이 동시에 올라왔습니다. 그리고 묘하게도, 현실에서 비슷한 자리에 서 있었던 사람들의 얼굴이 겹쳐지는 순간이 있었습니다. 그게 이 드라마가 단순한 범죄 스릴러와 다른 이유입니다.
시즌 1에서 제가 가장 인상적으로 본 구조는 다음과 같습니다.
- 1~2화: 1970년대 마약·권력 카르텔의 구조와 두 주인공 소개
- 3화: 백기태가 직접 '불법 사업자'로 뛰어드는 결정적 전환점
- 4화: 오사카 야쿠자 조직과의 연결, 한일 마약 루트 완성
- 5~6화: 카르텔 전체 구조 노출, 그리고 백기태의 1차 승리와 장건영의 몰락
여성 캐릭터 활용과 서사의 아쉬움
제가 직접 보면서 가장 아쉬웠던 지점 중 하나가 여기입니다. 배금지(조여정), 오예진(서은수), 이케다 유지/최유지(원지안)는 설정만 놓고 보면 각각 한 편의 드라마 주인공이 될 만한 인물들입니다.
배금지는 정치·재계·정보기관을 넘나들며 살아온 고급 요정 출신 로비스트입니다. 여기서 로비스트란 권력자들 사이에서 정보와 인맥을 교환하며 이익을 조율하는 중개자를 가리키는데, 1970년대 한국에서 이 역할은 요정 문화와 깊이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이케다 유지는 재일교포로, 어린 시절 부모를 잃고 오사카 야쿠자 조직의 수양딸이 된 채 국적과 정체성의 경계에서 살아온 인물입니다. 남성 위계 구조 속에서 현장을 발로 뛰는 여성 수사관 오예진까지, 세 인물 모두 단독 서사를 감당할 깊이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 화면 안에서 이들은 대부분 남성 주인공들의 선택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소비되는 장면이 많았습니다. 욕망의 주체로서 끝까지 자신만의 결정을 밀어붙이기보다, 백기태나 장건영의 서사에 얽혀 희생되거나 도구화되는 구조가 반복됩니다. 시대 배경이 1970년대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드라마의 시선 자체까지 그 시대에 묶일 필요는 없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점에 대해서는 "1970년대 분위기를 충실히 재현한 것"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는데, 저는 조금 다르게 봅니다. 서사적 선택과 시대 고증은 구별될 수 있고, 여성 인물들이 더 능동적인 주체로 그려졌다 해도 시대 재현의 완성도를 해치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시즌 1 결말이 남긴 무게
시즌 1은 명확하게 "백기태의 1차 승리, 장건영의 패배"로 끝납니다. 백기태는 황국평 사망 사건을 교묘하게 프레임 전환해 책임을 타인에게 넘기고, 오히려 중앙정보부 내 서열에서 한 단계 위로 올라선 채 시즌을 마무리합니다. 장건영은 증거를 잡으려는 순간마다 막히고, 결국 좌천과 고립이라는 형태의 몰락을 경험하며 전선에서 밀려납니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 솔직히 속이 후련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한동안 다른 콘텐츠를 바로 틀기 어려울 정도로 머리가 무거웠습니다. 1970년대 한국 현대사 연구를 다룬 자료들을 살펴보면, 이 시기 중앙정보부의 실제 비밀 자금 운용과 조직폭력배와의 연계는 역사적으로 상당 부분 기록된 사실입니다(출처: 국가기록원). 드라마가 완전한 허구가 아니라는 맥락이 결말의 무게를 더 묵직하게 만들었습니다.
제작비 700억 원이 투입된 영화급 스케일, 색감, 미장센은 분명히 장점입니다. 다만 모든 장면이 명장면처럼 찍히다 보니 정작 중요한 장면의 힘이 상대적으로 묻히는 역효과도 있었습니다. 잔혹한 폭력 묘사가 1970년대의 야만성을 보여주는 선택인지, 아니면 스타일로 소비되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비판적으로 질문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국 드라마 시청률 및 콘텐츠 소비 패턴에 관한 조사에 따르면, OTT 오리지널 시대극 장르에서 폭력성과 완성도 사이의 균형이 시청자 만족도를 결정하는 핵심 변수 중 하나로 꼽힙니다(출처: 한국콘텐츠진흥원).
결말을 보고 난 뒤 계속 머릿속을 맴도는 질문이 하나 있었습니다. 드라마 속 인물들이 각자 '애국'을 외칠 때, 그 애국이 실제로 누구를 살리고 누구를 죽이는지. 그리고 지금 우리가 쓰는 애국, 국익이라는 말은 그때와 얼마나 다를까.
「메이드 인 코리아」는 명작이라고 단정하기 어렵습니다. 인물의 입체성, 여성 캐릭터 서사, 폭력 연출의 균형 등 비판할 지점이 분명히 있습니다. 그러나 이 정도 규모로, 한국 현대사의 가장 어두운 시절을 '가해자의 욕망'으로 정면에서 응시한 드라마는 흔치 않습니다. 불편하게 만들고, 보고 나서도 쉽게 잊히지 않는다는 점에서, 한 번쯤 비판적으로 볼 가치는 충분히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시즌 2가 이 판을 어떻게 키워나갈지, 기대보다 걱정이 조금 더 앞서는 상태로 기다리고 있습니다.
참고: 메이드 인 코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