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회 시청률 11.5%를 기록하며 자체 최고를 찍은 드라마가 "해피엔딩인가, 이별인가"를 두고 방영 종료 후에도 몇 달째 논쟁을 이어갔습니다. 저도 그 논쟁의 한복판에서 꽤 오래 헤맸던 쪽입니다. 처음엔 90년대 말 레트로 소품들에 이끌려 가볍게 시작했는데, 마지막 회가 끝난 뒤 한동안 여운보다 허무함이 앞섰습니다. 그래서 이 글은 단순한 드라마 소개가 아니라, 과연 이 작품이 무엇을 잘했고 무엇을 놓쳤는지 나름의 시각을 정리한 기록입니다.
시청률 추이와 결말의 온도 차
〈스물다섯 스물하나〉는 2022년 2월 12일 tvN에서 첫 방송을 시작해 총 16부작으로 완결됐습니다. 초반 1
2회부터 6
8%대로 출발해 입소문을 타며 꾸준히 상승했고, 10회를 넘어서면서 두 자릿수에 안착했습니다. 12회에는 12%대까지 치솟으며 인기의 정점을 찍었고, 최종회는 닐슨코리아 기준 전국 평균 11.5%로 자체 최고 시청률을 경신하며 마무리됐습니다(출처: 연합뉴스).
여기서 닐슨코리아 시청률이란 전국 가구 표본을 기반으로 특정 시간대에 해당 프로그램을 시청한 비율을 측정하는 지표입니다. 쉽게 말해 100가구 중 몇 가구가 그 프로그램을 켜놓았는지를 수치화한 것으로, 케이블·종편 채널에서 10%를 넘기면 사실상 흥행작으로 분류됩니다.
시청률만 보면 흠잡을 데 없는 성공작입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건 이 수치가 올라갈수록 결말에 대한 기대감도 함께 부풀었고, 그 기대가 이별 엔딩과 충돌하면서 오히려 온도 차가 극적으로 벌어졌다는 점입니다. 저도 12회쯤에 "이 둘은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확신 아닌 확신을 갖게 됐는데, 그게 오히려 결말을 더 낯설게 만든 것 같습니다.
결말 구조를 간략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나희도와 백이진은 연인 관계를 유지하다 뉴욕 지국 특파원 파견, 오해와 감정 누적을 거쳐 이별
- 현재 시점의 성인 나희도가 딸 김민채와 함께 등장하고, 잃어버렸던 마지막 일기장이 2021년에 돌아오면서 과거가 재소환되는 구조
- 과거 굴다리 장면에서 "온 마음을 다해 사랑했어", "네가 가르쳐준 사랑이 내 인생을 얼마나 빛나게 했는지 넌 모를 거야"라는 내레이션으로 마무리
이 구조는 회상 서사(플래시백 내러티브)를 액자식으로 활용한 형태입니다. 회상 서사란 현재 시점에서 과거를 되돌아보는 서술 방식으로, 결말을 이미 암시하면서도 과거의 감정에 몰입하게 만드는 효과가 있습니다. 이 드라마는 민채가 어머니 희도의 일기장을 읽는 방식으로 그 구조를 구현했는데, 덕분에 시청자는 처음부터 "이 사랑은 끝난 사랑"임을 어느 정도 인지한 채 보게 됩니다.
청춘 서사의 빛과, 제가 느낀 구조적 아쉬움
이 드라마가 가장 잘한 부분은 1998년이라는 시대를 배경 장치가 아니라 인물의 실존적 조건으로 끌어들인 방식입니다. IMF 외환위기, 즉 1997년 말 한국이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하면서 시작된 경제 붕괴 국면은 단순한 시대적 배경이 아닙니다. 백이진은 집안이 무너진 뒤 각종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다 UBS 방송국 스포츠 기자로 성장하고, 나희도는 학교 펜싱부 해체라는 현실에 맞서 전학까지 감수하며 꿈을 붙듭니다. 이 두 사람이 겪는 고통의 출발점에 IMF라는 거시 구조가 분명히 있습니다.
저는 이 부분이 처음엔 꽤 설득력 있게 느껴졌습니다. 제가 직접 그 시대를 살지 않았어도, 펜싱 경기 장면에서 나희도가 울면서도 검을 끝까지 쥐고 서 있는 모습을 보면서 괜히 울컥했거든요. 스포츠 서사 특유의 카타르시스, 즉 극도의 긴장과 해소가 반복되는 서사 구조가 인물의 감정선과 맞물려서 흡인력이 상당했습니다.
그런데 드라마를 다 보고 나서 떠오른 질문 하나가 머릿속에 남았습니다. "이 청춘들을 이렇게 만든 건 누구인가?" 펜싱부를 해체한 결정, 가족을 파산시킨 구조, 기자를 회사 압박 속에 밀어넣는 시스템. 드라마는 이 요소들을 소재로 쓰면서도, 그것이 개인의 감정 문제로 귀결되는 방향을 선택합니다. 사회 구조가 배경 장치에 머물고, 인물의 고통은 결국 개인의 선택과 관계의 문제로 환원됩니다.
"현실적인 이별 엔딩이라 좋았다"는 쪽과 "그동안 쌓아온 감정에 비해 납득이 안 된다"는 쪽이 팽팽하게 나뉜 건 이런 이유이기도 합니다. 저는 후자에 가까웠는데, 이별 자체가 문제라기보다 결정적인 파국 장면에서 캐릭터들이 자신의 성장 궤적에서 이탈하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이건 이 인물이 이렇게 행동할 사람인가?" 하는 의문이 들었을 때, 저는 이미 서사가 아닌 작가의 의도에 끌려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또 결말에서 활용되는 굴다리 회상 장치는 과거의 사랑을 아름답게 봉인하는 역할을 하지만, 두 사람이 서로에게 쏟아냈던 상처와 모진 말들은 충분히 성찰되지 않은 채 "그땐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정서로 흘러갑니다. 상처를 낭만화하는 방식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것도 이 지점 때문입니다. 청춘의 빛을 아름답게 담은 것과 그 그림자를 정직하게 들여다보는 것은 다른 작업인데, 이 드라마는 후자에는 다소 안전한 선을 지킨 것으로 보입니다(출처: 위키백과 〈스물다섯 스물하나〉).
그럼에도 이 드라마의 레트로 재현 방식, 만화방·PC통신·전화카드 같은 소품들이 단순한 향수 자극이 아니라 인물들의 정서적 층위를 구성하는 데 기여한 점은 분명히 인상적이었습니다. 시대성과 감수성을 결합하는 연출력은 쉽게 보기 어려운 수준이었고, 김태리와 남주혁의 연기는 서사의 빈틈을 메우는 역할을 충분히 했습니다.
정리해서 말하면, 〈스물다섯 스물하나〉는 뛰어난 감수성과 시대 재현력을 갖춘 작품이지만, 청춘의 불안을 낳는 구조적 원인에는 충분히 깊이 내려가지 않은 채 감정을 아름답게 소비한 면이 함께 존재합니다. 이 두 가지가 공존하는 작품이기 때문에, 완전히 좋다고도 완전히 아쉽다고도 하기 어려운 게 저의 솔직한 결론입니다. 다시 보고 싶은 장면들이 분명히 있는 동시에, 다시 보면 더 분명해질 아쉬움도 함께 있는 드라마입니다. 아직 안 보신 분들이라면, 해피엔딩을 기대하기보다 "그 시절이 어떻게 끝나는가"를 담담하게 지켜보는 태도로 접근하시는 게 오히려 더 잘 맞을 것 같습니다.
참고: 스물다섯 스물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