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히어로물에서 주인공이 처음부터 능력을 완벽하게 쓴다면, 과연 재밌을까요? 넷플릭스 오리지널 「원더풀스」는 그 반대에서 시작합니다. 제가 예고편을 처음 봤을 때 "이게 히어로물이 맞나?" 싶었는데, 막상 보고 나니 그 어설픔이 이 드라마의 가장 큰 무기더군요. 가볍게 켰다가 결국 끝까지 보고 만 작품입니다.
1999년 해성시, 이 배경이 왜 지금 통하는가
「원더풀스」의 시간적 배경은 1999년, 이른바 세기말(世紀末)입니다. 세기말이란 20세기가 끝나는 시점을 앞두고 종말론·미신·괴담이 사회 전반을 뒤덮었던 분위기를 뜻합니다. 당시 한국에서도 Y2K 버그 공포, 각종 종말 예언, 도시 괴담이 실제로 사람들 사이에서 퍼져 있었고, 드라마는 그 공기를 꽤 충실하게 재현해 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 선택이 영리하다고 느꼈습니다. 지금 OTT 드라마 시장에는 현대 배경 히어로물이 넘쳐나는데, 1999년이라는 시공간은 스마트폰도 소셜미디어도 없는 환경입니다. 그러니 초능력자가 갑자기 동네에 나타나도 영상이 퍼지거나 뉴스에 즉각 뜨지 않는 개연성이 자연스럽게 만들어집니다. 설정의 허점을 시대 배경으로 막아버린 셈이죠.
배경 도시인 '해성시'는 가상의 지방 소도시로, 당시 지방 도시 특유의 생활감, 즉 비디오방·PC방·동네 식당·재래시장 같은 공간감이 소품과 미술 연출로 꼼꼼하게 채워져 있습니다. 저는 이 부분에서 레트로 감성(Retro Aesthetic), 그러니까 과거의 시각적 요소와 문화적 코드를 의도적으로 되살려내는 연출 방식이 단순한 향수 자극이 아니라 세계관 구축의 수단으로 쓰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단순히 "옛날 거 귀엽다" 수준이 아니라, 이 시대이기 때문에 이 이야기가 가능하다는 논리가 배경 속에 깔려 있거든요.
연출을 맡은 유인식 감독은 「낭만닥터 김사부」와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로 이미 검증된 이름이고, 극본의 허다중 작가는 영화 「극한직업」 각색에 참여한 경력이 있습니다. 코미디의 리듬과 인간 드라마의 온기를 동시에 잡는 데 익숙한 조합이라는 점이, 시청 전부터 이 드라마의 톤앤매너를 어느 정도 예측하게 해줬습니다.
4인 캐릭터 분석, 진짜 매력은 어디서 오는가
「원더풀스」에서 초능력을 얻는 주인공은 네 명입니다. 그런데 이 네 명, 하나같이 동네에서 '문제 있는 사람'으로 통하는 캐릭터들입니다. 이 지점이 저는 꽤 마음에 들었습니다.
캐릭터와 초능력 구성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은채니(박은빈): 심장병을 앓으며 자란 식당 손녀, 초능력은 순간이동. 처음엔 엉뚱한 곳에 뚝 떨어지는 통제 불능 상태.
- 이운정(차은우): 비밀 많은 시청 공무원, 초능력은 염력(念力). 감정이 폭주하면 능력도 폭주하는 구조.
- 손경훈(최대훈): 동네 공식 진상, 초능력은 끈끈이 점착 능력. 적을 붙잡으려다 본인도 같이 붙어버리는 상황이 반복됨.
- 강로빈(임성재): 동네 공식 호구, 초능력은 괴력. 힘이 엄청나게 세졌지만 조절을 못해 주변을 더 망가뜨림.
캐릭터 설계에서 주목할 만한 점은, 각자의 초능력이 그 사람의 결핍이나 성격과 연결되어 있다는 구조입니다. 염력은 "감정 조절이 안 되는 인물"에게 가고, 괴력은 "힘을 쓸 줄 모르는 순한 사람"에게 갑니다. 이를 캐릭터 아크(Character Arc)라고 하는데, 여기서 아크란 인물이 이야기를 통해 내면적으로 변화하는 과정을 의미합니다. 결핍이 능력의 약점과 맞닿아 있으니, 능력을 극복하는 과정이 곧 인물의 성장 서사가 되는 구조입니다.
저는 이 설계가 단순히 웃기려고 만든 B급 코미디가 아니라는 인상을 줬습니다. 실제로 후반부로 갈수록 개그 씬보다 인물 감정선이 더 강하게 느껴지는 순간들이 있었거든요.
박은빈의 연기는 솔직히 예상 범위를 넘었습니다. 직진 캐릭터의 코미디 타이밍과 심장병이라는 내면 불안을 동시에 잡아내는 게 쉽지 않은데, 이 드라마가 끝까지 흘러갈 수 있었던 건 그 균형감 덕분이라고 봅니다. 반면 차은우는 "무표정 공무원"이라는 설정이 연기의 아쉬움을 어느 정도 가려주는 구조이긴 했습니다. 이건 제 솔직한 생각입니다.
한국 콘텐츠진흥원이 분석한 OTT 드라마 흥행 요인 중 "캐릭터 공감도"는 일관되게 상위에 꼽히는 항목입니다(출처: 한국콘텐츠진흥원). 「원더풀스」는 그 공감도를 완벽함이 아닌 허술함에서 만들어낸다는 점에서, 적어도 전략적으로는 올바른 방향을 택했다고 봅니다.
가볍게 보기 좋은가, 아니면 그 이상인가
저는 「원더풀스」를 보면서 두 가지 감정이 동시에 들었습니다. 하나는 "이거 진짜 재밌다"이고, 다른 하나는 "조금 더 욕심을 냈으면 어땠을까"였습니다.
드라마의 서사 구조는 에피소드형 서사와 연속 서사를 섞은 방식입니다. 에피소드형 서사란 매 회 작은 사건이 독립적으로 해결되면서도, 전체를 관통하는 큰 이야기가 병행되는 구성을 뜻합니다. 이 방식은 부담 없이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역설적으로 긴장감이 잘 쌓이지 않는다는 단점도 생깁니다.
빌런 라인인 '분더킨더' 조직과 손현주가 연기하는 수장 캐릭터는 분명 흥미롭게 설계됐는데, 8부작이라는 러닝 안에서 그 서사가 충분히 열리지 못하고 닫히는 느낌이 있었습니다. 세계관을 더 확장할 여지가 있었는데 안전하게 마무리한 인상이랄까요. 저는 이 부분이 가장 아쉬웠습니다.
넷플릭스 공개 기준으로 한국 드라마의 평균 시즌당 편수가 16부작 내외인 것과 비교하면(출처: 넷플릭스 공식 사이트), 8부작은 절반 분량입니다. 짧기 때문에 지루할 틈이 없다는 건 분명한 장점이지만, 이야기의 밀도를 높이기엔 빠듯한 분량이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이 드라마를 "볼 만하다"고 추천하고 싶습니다. 특히 아래 조건에 해당하는 분이라면 더 잘 맞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 무거운 범죄·복수 서사 없이 가볍게 웃으면서 보고 싶은 분
- 1990년대 말 레트로 분위기 자체가 취향인 분
- 박은빈 혹은 최대훈·임성재 조합의 앙상블 케미를 좋아하는 분
결국 「원더풀스」는 "히어로물의 공식을 따르되, 공식을 따르는 인물들이 공식에 걸맞지 않은 사람들"이라는 아이디어 하나로 버티는 드라마입니다. 그 아이디어가 얼마나 본인 취향에 맞는지가 이 드라마와의 궁합을 결정할 것 같습니다. 직접 1화를 눌러보시면 30분 안에 답이 나올 겁니다.
참고: 원더풀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