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솔직히 처음엔 "또 여자 친구들 우정 드라마구나" 싶었습니다. 그런데 1화를 끄고 나서 한동안 멍하니 있었습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은중과 상연〉은 1992년 초등학교 교실부터 마흔셋의 스위스 여행까지, 두 여자의 30년을 따라가는 작품입니다. 제가 이 드라마를 보면서 계속 들었던 질문이 하나 있는데, "나는 누군가에게 은중이었을까, 상연이었을까"였습니다.
30년을 오가는 플래시백 서사 구조
혹시 드라마를 보다가 "지금이 몇 년도 장면이지?" 하고 잠깐 멈춘 적 있으신가요? 〈은중과 상연〉은 비선형 서사(non-linear narrative) 구조를 택하고 있습니다. 비선형 서사란 이야기를 시간 순서대로 전개하지 않고, 과거와 현재를 교차하며 구성하는 방식입니다. 현재 시점인 마흔셋의 은중이 상연의 부탁을 받는 장면에서 시작해, 1992년 초등학교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플래시백 형식이 드라마 전체를 관통합니다.
제가 직접 보면서 느낀 건, 이 구조가 처음엔 좀 피로하게 느껴졌다는 겁니다. 10대로 갔다가 30대로 왔다가, 다시 20대 초반으로 돌아오는 흐름이 중후반부에서는 "오해 → 폭발 → 절교 → 재회"의 패턴처럼 반복되는 느낌을 줬거든요. 이걸 현실적인 인간관계의 묘사라고 볼 수도 있지만, 서사적 응축을 기대한 입장에서는 솔직히 답답한 순간이 분명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이 구조가 유효한 이유는 있습니다. 결말에서 과거의 모든 조각들이 맞춰지는 순간, "아, 그때 그 장면이 이런 의미였구나"가 뒤늦게 밀려오는 구성이거든요. 30년이라는 시간이 선형으로 흘렀다면 절대 나오지 않았을 감정의 밀도입니다.
애증 관계라는 감정선, 어디까지가 우정인가
"제일 좋아했고 제일 미워했던 사람"이라는 표현이 여러분에게는 어떻게 들리시나요? 저는 처음에 과장된 드라마 문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보다 보니 이건 꽤 정확한 묘사였습니다.
류은중(김고은)과 천상연(박지현)의 관계는 드라마 용어로 워맨스(womance)의 전형처럼 보이지만, 실제 감정선은 그보다 훨씬 복잡합니다. 워맨스란 여성 간의 깊은 우정을 로맨스에 빗대어 표현하는 장르 개념입니다. 그런데 이 드라마는 공식적으로 워맨스 드라마를 표방하면서도, 두 사람이 주고받는 감정의 밀도가 어떤 로맨스보다 강렬하게 그려져서 시청자들 사이에서 "이게 퀴어 서사 아닌가"라는 논쟁이 자연스럽게 생겨났습니다.
제 경험상 이런 감정의 모호함이 이 드라마의 핵심입니다. 명확하게 규정하고 싶은 시청자에게는 불만족스러울 수 있고, 저도 그 지점에서 작가와 연출이 끝까지 책임을 지지 않고 한 발 물러선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만약 정말로 "한 사람을 향한 사랑"에 대한 이야기라면, 더 과감하게 나아갔어야 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이 드라마에서 감정선을 읽을 때 주목할 포인트를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 은중이 상연을 바라보는 시선에 선망, 질투, 끌림이 동시에 존재한다
- 상연은 은중을 "나를 이해하는 유일한 사람"으로 여기면서도 관계를 반복적으로 망친다
- 두 사람이 주고받는 말들이 어떤 장면에서는 사랑 고백으로, 어떤 장면에서는 폭력으로 들린다
- 결말까지 관계를 단 하나의 단어로 규정하지 않는다
존엄사 동행이라는 장치, 감동인가 소비인가
말기 암 진단을 받은 상연이 오랫동안 연락이 끊겼던 은중에게 "스위스에 같이 가 달라"고 부탁하는 장면, 기억하시나요? 저는 이 장면에서 단순한 부탁이 아니라 "내 인생의 증인이 되어 달라"는 말로 들려서 가슴이 턱 막혔습니다.
이 드라마는 조력사망(assisted dying)을 서사의 핵심 장치로 사용합니다. 조력사망이란 회복 가능성이 없는 말기 환자가 본인의 의사에 따라 의료진의 도움을 받아 생을 마감하는 것을 의미하며, 스위스에서는 법적으로 허용된 제도입니다. 한국에서는 2018년부터 연명의료결정법이 시행되고 있지만, 조력사망은 아직 법적으로 허용되지 않은 영역입니다(출처: 국가생명윤리정책원).
이 설정이 강렬한 감정을 불러오는 건 사실입니다. 그런데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감정적으로는 눈물 버튼을 정확히 누르면서도, 존엄사가 가진 현실적인 윤리 논의는 드라마 안에서 다소 얕게 스쳐 지나가는 느낌이 들었거든요. 장치로서의 존엄사와 실제 삶에서의 존엄사 사이에는 분명 무게의 차이가 있고, 그 간극이 아쉬운 부분으로 남습니다. 감정선에 완전히 몰입한 시청자라면 상연의 선택을 용기 있는 자기 결정으로 받아들이겠지만, 한 발 떨어져서 보면 "이 드라마가 죽음의 방식을 충분히 고민했나"라는 질문이 남습니다.
원작 논란과 두 배우의 연기력
"이 드라마, 어디서 본 것 같지 않으세요?" 이런 생각이 드셨다면, 혼자만의 느낌이 아닙니다. 일부 시청자들 사이에서는 중국 소설·영화 〈칠월과 안생〉과의 유사성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나왔습니다. 제작진은 공식적으로 "리메이크가 아닌 독창적 오리지널"이라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개인적으로 원작 의혹 자체보다 중요한 건 이 작품이 그 감정의 결을 얼마나 잘 구현해냈는가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답은 두 배우에게서 찾을 수 있습니다. 캐릭터 아크(character arc)라는 개념이 있는데, 이는 한 인물이 이야기 전체를 통해 심리적·감정적으로 변화해 가는 궤적을 뜻합니다. 김고은이 연기하는 은중의 캐릭터 아크는 10대의 열등감 많은 소녀에서 영화 프로듀서로 성장하는 과정인데, 나이대별로 감정을 다르게 표현하는 방식이 설득력이 있었습니다.
박지현이 연기하는 상연은 겉으로 완벽해 보이지만 가족 갈등과 압박을 안고 사는 인물입니다. 특히 말기 암 환자로서의 몸 상태와 40대 특유의 체념, 그리고 은중을 향한 감정을 동시에 담아내는 후반부 연기는 제가 직접 보면서 꽤 오래 여운이 남았습니다. 연기력 측면에서는 두 배우 모두 기대 이상이라는 게 솔직한 평가입니다. 참고로 한국 드라마 산업 규모는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있으며, 넷플릭스 오리지널 한국 콘텐츠에 대한 글로벌 관심도 역시 높아지고 있습니다(출처: 한국콘텐츠진흥원).
결국 〈은중과 상연〉은 "나도 언젠가 누군가와 이렇게 엇갈렸을지 모른다"는 자책 섞인 공감을 불러오는 드라마입니다. 구조적 아쉬움과 존엄사 설정에 대한 의문이 남더라도, 두 사람이 서로에게 남긴 상처와 애정의 현실감은 끝까지 보게 만드는 힘이었습니다. 아직 보지 않으셨다면, 1화만 일단 틀어보시길 권합니다. 1화가 끝난 뒤 멈출 수 있다면, 저보다 훨씬 이성적인 분이실 겁니다.
참고: 은중과 상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