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솔직히 저는 처음에 이 드라마를 그냥 틀어만 놓을 생각이었습니다. "또 좀비물이겠지"라는 생각으로 1화를 켰는데, 어느 순간 자세를 고쳐 앉고 있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좀비 장르는 자극과 공포가 전부라고 알려져 있지만, 제 경험상 이 작품은 그 공식이 절반도 맞지 않는 드라마였습니다. 2022년 1월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12부작 학원 좀비 드라마 〈지금 우리 학교는〉, 재미있었는지 아쉬웠는지를 최대한 솔직하게 정리해 보겠습니다.
장르 결합이 만든 것들, 그리고 서사 밀도의 문제
이 드라마의 장르적 강점은 '학원물'과 '좀비 스릴러'의 결합에서 나옵니다. 장르 결합(genre hybrid)이란 두 개 이상의 장르 문법을 의도적으로 섞어 새로운 서사 공간을 만드는 창작 전략을 말합니다. 쉽게 말해, 교복과 좀비를 한 화면에 넣었을 때 생기는 낯선 긴장감 자체가 이 작품의 핵심 무기입니다.
제가 직접 봤을 때 가장 인상 깊었던 건, 이 드라마가 좀비의 잔인함보다 살아남은 인간들이 잔인해질 수 있는 가능성을 더 집요하게 보여준다는 점이었습니다. 감염 여부가 불확실한 친구를 안으로 들일 것인지 말 것인지 고민하는 장면, 누군가를 배제해야만 나머지가 살 수 있는 상황이 반복될 때마다, 화면보다 제 마음이 먼저 얼어붙는 느낌이었습니다.
왕따, 학교폭력, 교사와 학생 사이의 불신 같은 현실적인 소재들이 생존극 안에 끼어드는 방식도 특이했습니다. 일반적으로 이런 소재들은 드라마의 감성적 깊이를 만들기 위한 장치로 기능한다고 보는 시각도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그 의도는 충분히 느꼈지만 후반으로 갈수록 그 복잡한 맥락이 정교하게 회수되지 못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가해자와 방관자 캐릭터가 초반에는 입체적으로 쌓이다가, 결국 공포를 극대화하는 장치로 소비되는 순간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서사 밀도(narrative density) 측면에서도 아쉬움이 남습니다. 서사 밀도란 단위 분량 안에 얼마나 의미 있는 사건과 감정의 층위가 쌓이는지를 말합니다. 초반 학교 봉쇄 구간은 이 밀도가 높았습니다. 폐쇄된 공간에서 인물 하나하나의 선택이 또렷하게 보였고, 그 선택들이 쌓이면서 긴장이 유지되었습니다. 그런데 군·정부·도시 전체 상황이 본격적으로 끼어드는 중반 이후부터 카메라가 너무 많은 곳을 동시에 쫓기 시작하면서, 정작 처음에 깊게 파고들던 학생들의 서사가 조금씩 옅어졌습니다.
이 드라마가 시즌 1 공개 직후 전 세계 여러 국가의 넷플릭스 시청 순위 1위를 기록한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출처: 넷플릭스 공식 사이트). 그만큼 장르적 흡인력은 검증되었지만, 저는 "조금만 더 밀어붙였으면 정말 좋은 드라마가 될 수 있었는데"라는 아쉬운 가능성도 함께 느꼈습니다.
이 드라마의 핵심 서사 구조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1단계: 효산고등학교 내부 바이러스 확산 → 폐쇄 공간 생존극 집중
- 2단계: 학생들 사이의 선택과 관계 붕괴, 인물별 감정선 강화
- 3단계: 학교 밖 군·정부 대응, 방역과 통제의 구조적 질문으로 확장
- 4단계: 생존자 트라우마와 시즌 2 복선 구성
연출 한계와 감정 과잉, 그럼에도 남는 것
연출적으로 이 드라마는 분명 잘 만들어진 시퀀스들이 있습니다. 좁은 복도, 계단, 창틀이라는 제한된 공간 안에서 좀비 물결이 한 번에 밀려올 때의 압박감은 실제로 강했습니다. 창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안과 밖의 운명이 극단적으로 갈리는 장면들은 꽤 오래 기억에 남았습니다.
그런데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중반 이후 비슷한 구도의 추격 시퀀스가 반복되면서 패턴이 읽히기 시작했다는 점입니다. 미장센(mise-en-scène)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미장센이란 화면 안에 배치되는 배우, 조명, 공간, 소품의 구성 전체를 가리키는 영화·드라마 연출 용어입니다. 이 드라마는 초반에 학교라는 공간의 미장센을 아주 효과적으로 활용했지만, 같은 공간이 반복되다 보니 후반에는 그 신선함이 줄어드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감정 신 연출에서도 제 생각은 조금 다릅니다. 슬픈 장면일수록 음악과 카메라 워크를 두텁게 덧씌워서 시청자에게 '지금 울어야 한다'는 신호를 적극적으로 보내는 방식이 자주 보였는데, 오히려 덜 설명하고 덜 울리려 했다면 더 오래가는 여운이 생겼을 것 같습니다. 카타르시스(catharsis)란 극적 경험을 통해 감정이 해소되는 현상을 말하는데, 이 작품은 그 카타르시스를 너무 친절하게, 너무 자주 유도하려다 보니 오히려 감정적 피로감을 주는 순간이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제 경험상 이 드라마에서 가장 오래 남는 것은, 좋아하는 친구에게 끝내 마음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한 채 헤어지는 장면들이었습니다. 남온조, 이청산, 최남라라는 세 인물의 감정선은 단순한 생존극을 넘어서는 지점을 분명히 건드렸고, 그 관계성이 강한 팬덤을 만들어낸 이유도 이해가 되었습니다.
한국 드라마의 OTT(Over-The-Top) 플랫폼 흥행에 대한 연구에서도 캐릭터 감정 이입이 장기 시청 지속성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다는 분석이 있습니다(출처: 한국콘텐츠진흥원). 여기서 OTT란 인터넷을 통해 방송·영화 콘텐츠를 제공하는 스트리밍 서비스 전체를 의미합니다. 이 작품이 그 분석의 좋은 사례가 된다는 점에서, 캐릭터 설계만큼은 분명히 잘 된 드라마였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우리 학교는〉을 다 보고 나서 든 감정은 "재미있었다"보다 "학교라는 공간이 얼마나 쉽게 지옥으로 변할 수 있는지, 그 안에서 아이들이 얼마나 외로운 존재인지"에 대한 씁쓸함에 가까웠습니다. 장르적 쾌감을 원한다면 충분히 만족스러운 드라마이고, 조금 더 깊이 들어가면 제 학창 시절을 낯선 시선으로 돌아보게 만드는 불편한 체험이기도 합니다. 시즌 2가 제작 확정된 만큼, 이번에는 초반의 밀도를 끝까지 유지하는 서사를 기대해 볼 만합니다. 아직 안 보셨다면, 1화에서 2화로 넘어가는 순간까지만 일단 버텨보시길 권합니다.
참고: 지금 우리학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