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127 인휴먼즈 (설정, 연출, 막시무스) 솔직히 처음 틀었을 때는 기대가 꽤 컸습니다. 달 위의 왕국, 말 한마디가 도시를 날려버리는 왕, 머리카락으로 싸우는 왕비, 순간이동하는 거대한 개까지. 설정만 놓고 보면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 안에서도 손꼽히게 과감한 작품이었으니까요. 그런데 8부작을 다 보고 나서 든 생각은 단 하나였습니다. 재료는 최상급인데, 요리가 아쉽다.설정만큼은 진짜였다 — 아틸란과 테리젠일반적으로 MCU 드라마는 영화의 세계관을 확장하는 보조적인 역할에 머문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인휴먼즈》는 달 위에 숨겨진 왕국 '아틸란'을 전면에 세우며, 영화보다 더 독자적인 세계를 만들려는 시도를 했습니다. 제가 직접 보면서 느낀 건, 이 야심 자체는 분명히 살아있었다는 점입니다.인휴먼즈라는 종족의 탄생 배경부터가 그렇.. 2026. 5. 16. 도시남녀의 사랑법 (현실 연애, 세 커플 결말, 드라마 후기) "달달한 로코 보고 싶어서 틀었다가 제 연애 생각에 멍해진 드라마"라는 말을 어딘가에서 봤는데, 저도 정확히 그랬습니다. 2020년 카카오TV에서 방영된 《도시남녀의 사랑법》은 넷플릭스에도 공개된 총 17부작 로맨스 드라마로, 세 커플의 연애를 동시에 따라가는 구조입니다. 한 커플만 해피엔딩으로 끝난다는 사실을 알고 보기 시작했는데, 보고 나서 "이 드라마, 그냥 연애물이 아니다"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현실 연애를 드라마로 옮긴다는 것의 가능성이 드라마가 내세우는 가장 큰 장치는 옴니버스 형식과 페이크 다큐 스타일의 인터뷰 구성입니다. 옴니버스 형식이란 여러 독립적인 이야기를 하나의 작품 안에 엮는 구조를 말하는데, 《도시남녀의 사랑법》은 세 커플 각각의 이야기를 따로 전개하면서도 인물들의 관계망으로 느.. 2026. 5. 15. 눈물의 여왕 (시청 후기, 서사 분석, 비석 엔딩) 주말 밤에 별생각 없이 1화를 켰다가, 다음 날 아침에 눈을 떠보니 6화까지 봐버린 경험이 있으신가요. 저는 그게 〈눈물의 여왕〉이었습니다. 2024년 tvN에서 방영된 이 드라마는 16부작 내내 화제성 1위를 놓치지 않았는데, 직접 봐보니 그 이유가 단순히 배우의 인기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전형적인 설정인데, 왜 이렇게 빠져드나처음 드라마 소개를 접했을 때 솔직히 큰 기대는 하지 않았습니다. "재벌 3세 아내, 시골 출신 남편, 이혼 위기, 시한부 병"이라는 소재는 하나하나 떼어보면 한국 드라마에서 수없이 반복된 설정이니까요. 그런데 막상 보니 톤이 달랐습니다.초반부는 블랙 코미디(black comedy)에 가까운 감각으로 진행됩니다. 블랙 코미디란 어둡거나 불편한 상황을 웃음의 소재로 끌어올리는 장르.. 2026. 5. 14. 철인왕후 (빙의 설정, 철종 재해석, 해피엔딩) tvN 〈철인왕후〉는 2020년 12월부터 2021년 2월까지 방영되어 최고 시청률 17.4%를 기록했습니다(출처: 닐슨코리아). 처음 설정을 들었을 때 솔직히 "이게 말이 되나?" 싶었는데, 막상 보고 나니 그 황당함이 오히려 이 드라마의 가장 큰 무기였습니다.빙의 설정이 끝까지 작동한 이유〈철인왕후〉의 핵심 장치는 빙의(憑依)입니다. 빙의란 다른 존재의 영혼이나 의식이 한 몸을 점유하는 설정으로, 판타지 장르에서 흔히 쓰이지만 이 드라마는 그 설정을 사극 문법과 정면충돌시키는 방식으로 활용합니다. 현대 남자 셰프 장봉환의 영혼이 조선의 중전 김소용 몸 안으로 들어가면서, 조선의 법도와 현대 남자의 감각이 매 장면에서 충돌합니다.제가 직접 보면서 느낀 건, 이 설정이 단순히 웃기려고 쓴 게 아니라는 점.. 2026. 5. 13. 이번 생은 처음이라 (계약결혼, 현실로맨스, 하우스푸어) 사랑을 시작하기 전에 대출 상환 일정을 먼저 따지는 사람, 이상하다고 생각하셨습니까? 저는 이 드라마를 보기 전까지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번 생은 처음이라〉를 보고 나서, 그게 사실은 꽤 현실적인 감각이라는 걸 인정하게 됐습니다. 2017년에 방영된 tvN 월화드라마로, 집 없는 보조작가와 집은 있지만 2048년까지 대출을 갚아야 하는 하우스푸어가 계약 결혼을 선택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입니다.계약결혼이 로맨틱해 보이지 않았던 이유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계약 결혼이라고 하면 보통 드라마에서 '설레는 장치'로 쓰이는 경우가 많은데, 이 작품은 그 설정을 꽤 건조하게 가져옵니다. 남세희(이민기)와 윤지호(정소민)가 계약서를 꺼내 드는 장면은 낭만적이기보다는, 월세 분담과 가사 노동 비율을 .. 2026. 5. 12. 사이코지만 괜찮아 (트라우마, 치유 로맨스, 캐릭터) 솔직히 이 드라마를 처음 틀었을 때는 "예쁜 그림체에 로맨스 한 스푼" 정도로 생각했습니다. 근데 2회를 넘기면서 느낌이 달라졌습니다. 로맨스가 껍데기고, 안에는 트라우마(trauma)와 가족이라는 훨씬 무거운 이야기가 들어 있었습니다. 그 무게가 불편하면서도 끝까지 놓지 못하게 만들었습니다.잔혹동화 미장센이 감추고 있는 것 — 트라우마와 애착 결핍드라마의 첫인상은 확실히 강렬합니다. 고문영(서예지)이 잔혹동화 스타일의 아동문학을 쓰는 작가로 등장하면서, 드라마 전체가 동화책 삽화를 펼쳐 보는 것 같은 미장센으로 전개됩니다. 여기서 미장센(mise-en-scène)이란 화면 안에 배치되는 조명, 의상, 세트, 색감 등 시각적 요소 전체를 아우르는 영화 연출 용어입니다. 이 드라마는 그 미장센 하나만으로도.. 2026. 5. 11. 이전 1 ··· 8 9 10 11 12 13 14 ··· 2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