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리뷰32 백설공주에게 죽음을 (누명, 원작 비교, 결말) 10년이라는 시간을 빼앗긴 사람에게 뒤늦은 무죄 판결이 과연 위로가 될 수 있을까요. 2024년 MBC 금토드라마 〈백설공주에게 죽음을-Black Out〉은 저에게 바로 그 질문을 집요하게 던진 작품입니다. 시신조차 발견되지 않은 살인사건의 범인으로 몰린 한 청년이 10년 뒤 출소해 진실을 역추적하는 이야기로, 변영주 감독의 첫 드라마 연출작이라는 점도 개인적으로는 꽤 큰 기대를 갖게 했습니다.누명, 그리고 한 사람의 청춘이 부서지는 방식드라마를 보기 전에 원작 소설을 먼저 읽었습니다. 독일 추리소설가 넬레 노이하우스의 작품답게, 원작은 사회파 미스터리(social mystery) 특유의 촘촘한 다층 서사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여기서 사회파 미스터리란 단순히 범인 찾기에 그치지 않고, 사건 뒤에 놓인 사회.. 2026. 5. 26. 취사병 전설이 되다 (원작 비교, 드라마 각색, 성장 서사) 군대 드라마에서 밥이 주인공이 될 수 있을까요? 저도 처음엔 반신반의했습니다. 총 대신 식칼을 들고, 탄띠 대신 앞치마를 두른 이등병이 전설이 된다는 설정이 과연 먹힐지 솔직히 확신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보고 나니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tvN·티빙에서 2026년 5월 11일부터 방영 중인 〈취사병 전설이 되다〉는, 게임식 상태창 시스템과 요리라는 조합으로 군대물이라는 장르를 꽤 영리하게 비틀어 놓은 작품입니다.원작과 드라마, 어디서 갈리는지 알아야 덜 헷갈립니다원작 웹소설과 웹툰을 먼저 접하고 드라마를 보신 분들이 가장 많이 혼란스러워하는 지점이 바로 히로인 구도입니다. 제가 웹소설을 먼저 훑고 드라마를 보기 시작했는데, 인물 배치가 꽤 다르게 느껴져서 처음에 좀 당황했습니다. 원작 웹소설의.. 2026. 5. 18. 이번 생은 처음이라 (계약결혼, 현실로맨스, 하우스푸어) 사랑을 시작하기 전에 대출 상환 일정을 먼저 따지는 사람, 이상하다고 생각하셨습니까? 저는 이 드라마를 보기 전까지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번 생은 처음이라〉를 보고 나서, 그게 사실은 꽤 현실적인 감각이라는 걸 인정하게 됐습니다. 2017년에 방영된 tvN 월화드라마로, 집 없는 보조작가와 집은 있지만 2048년까지 대출을 갚아야 하는 하우스푸어가 계약 결혼을 선택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입니다.계약결혼이 로맨틱해 보이지 않았던 이유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계약 결혼이라고 하면 보통 드라마에서 '설레는 장치'로 쓰이는 경우가 많은데, 이 작품은 그 설정을 꽤 건조하게 가져옵니다. 남세희(이민기)와 윤지호(정소민)가 계약서를 꺼내 드는 장면은 낭만적이기보다는, 월세 분담과 가사 노동 비율을 .. 2026. 5. 12. 사이코지만 괜찮아 (트라우마, 치유 로맨스, 캐릭터) 솔직히 이 드라마를 처음 틀었을 때는 "예쁜 그림체에 로맨스 한 스푼" 정도로 생각했습니다. 근데 2회를 넘기면서 느낌이 달라졌습니다. 로맨스가 껍데기고, 안에는 트라우마(trauma)와 가족이라는 훨씬 무거운 이야기가 들어 있었습니다. 그 무게가 불편하면서도 끝까지 놓지 못하게 만들었습니다.잔혹동화 미장센이 감추고 있는 것 — 트라우마와 애착 결핍드라마의 첫인상은 확실히 강렬합니다. 고문영(서예지)이 잔혹동화 스타일의 아동문학을 쓰는 작가로 등장하면서, 드라마 전체가 동화책 삽화를 펼쳐 보는 것 같은 미장센으로 전개됩니다. 여기서 미장센(mise-en-scène)이란 화면 안에 배치되는 조명, 의상, 세트, 색감 등 시각적 요소 전체를 아우르는 영화 연출 용어입니다. 이 드라마는 그 미장센 하나만으로도.. 2026. 5. 11. 갯마을 차차차 (힐링 로맨스, 공동체 서사, 비판적 시각) 솔직히 말하면, 저는 이 드라마를 처음 켤 때 별 기대가 없었습니다. 바닷마을 배경에 도시 여자와 시골 남자가 사랑에 빠진다는 설정, 어디선가 본 듯한 구도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거든요. 그런데 퇴근 후 멍하니 재생을 눌렀다가, 어느새 공진 마을 사람들 이름을 전부 외우고 있는 저를 발견했습니다. 〈갯마을 차차차〉가 단순한 달달한 로맨스 이상의 무언가를 품고 있다는 걸 그때 알았습니다.퇴근 후 공진으로 출근한 이유처음 몇 화는 그야말로 가볍게 볼 수 있는 로맨틱 코미디(로코)의 교과서 같았습니다. 로코란 로맨틱 코미디의 줄임말로, 남녀 주인공 사이의 티격태격과 설렘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장르를 말합니다. 윤혜진이 공진에 내려와서 마을 사람들을 답답해하고, 홍두식이 능글맞게 그 틈을 비집고 들어오는 초반 구도.. 2026. 5. 10. 동백꽃 필 무렵 (편견과 공동체, 직진 로맨스, 까불이 서사) 2019년 KBS2에서 방영된 〈동백꽃 필 무렵〉은 시청률 23.8%(닐슨코리아 기준)로 그해 지상파 드라마 1위를 기록했습니다. 처음 이 드라마를 누른 건 "공효진이랑 강하늘이 나오는 로코"라는 정도의 기대였는데, 몇 화 지나지 않아 옹산이라는 마을이 생각보다 훨씬 복잡한 공간이라는 걸 알게 됐습니다.편견과 공동체, 옹산이라는 무대가 만드는 현실전라남도 바닷가 마을 옹산에서 술집 '까멜리아'를 운영하는 싱글맘 오동백은, 미혼모이자 술집 사장이라는 이유만으로 동네 아줌마들에게 끊임없이 수군거림을 당합니다. 드라마가 이 장면들을 처리하는 방식이 제가 볼 때 이 작품의 가장 큰 미덕입니다. 과장이나 희화화 없이, 그냥 일상의 속도로 보여줍니다. 그래서 오히려 더 불편합니다.사회학에서는 이런 현상을 낙인 이론.. 2026. 5. 9. 이전 1 2 3 4 5 6 다음